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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에 100억 준 의사 “백신 개발 과학자 키워라”

작성일 : 2021-12-27 조회 :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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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점심시간 경남 창원한마음병원 로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헝가리 춤곡’이 병원 1층 로비에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의료진과 입원환자 등 로비에 있던 이들이 박수로 장단을 맞추며 공연을 즐겼다. 매주 수요일 점심 때 이곳에서 1시간 동안 열리는 공연은 코로나19 대응에 지친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창원한마음병원 오케스트라는 이 병원 하충식(61) 이사장이 꾸린 국내 최초 ‘기업형’ 장애인 오케스트라단. 단원 20여 명은 지적·자폐성 등 발달장애가 있는 지역 장애인 예술가로 창원한마음병원의 정규직 직원이다. 본래 장애인 예술가들을 지도하던 정지선 단장이 하 이사장을 만나 오케스트라 구성을 요청하면서 지난 7월 창단됐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이지만, “재능 있고 젊은 장애인 예술가들의 꿈을 지켜달라”는 정 단장 요청을 하 이사장이 기꺼이 응답했다.


 하 이사장은 1994년부터 사회복지와 교육 부문에 300억 원가량 기부한 독지가. 최근엔 “의사과학자를 양성해달라”며 100억 원을 포스텍에 쾌척했다. 부산대에도 같은 금액 기부 약정을 계획하고 있으며, 25년간 병원 직원들과 함께 나선 청소 봉사활동은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국민추천포장을 부부가 함께 받은 매우 드문 사례에도 해당한다. 본업인 진료의사 이외에 ‘사회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이라도 있는 걸까. 하 이사장을 직접 만나 물었다.


 “자신의 의지나 책임과는 무관하게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 제가 마음 쓰고 돌보려는 일의 95%는 그런 아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 이사장의 철학이다. 오케스트라 운영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시작했다. “청소년 장애인 예술가를 지도하던 정 단장으로부터 ‘성인이 된, 역량 있는 아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힘들어한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마침 우리 병원은 장애인 의무고용기관입니다. 오케스트라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오케스트라 운영은 ‘자선사업’이 아니라고 했다. “실력이 검증된 연주가들을 모셨습니다. 단원들은 공연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연주하며 만족감을 느낍니다. 관객들이 이들의 연주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뜻 깊은 일입니다.”


 조선대 의대를 졸업하고 부산대에서 의학 석·박사를 마친 하 이사장은 사회공헌을 30년 가까이 이어왔다. 병원 창문에 에어캡(일명 뽁뽁이)을 붙여 아낀 전기요금을 활용해 지역 청소년 교복 지원 사업을 벌인 게 대표적이다. 그는 “내가 학교를 다닐 땐 끼니를 거르는 것은 물론 교복을 제대로 입지 못하거나,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일이 흔했다. 개인에겐 매우 아픈 추억일 것”이라고 했다.


 혹 그 같은 아픔을 겪어본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하 이사장은 웃으며 “나는 형편이 넉넉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다만 모친께서 늘 나눔을 강조하고, 실제 집에 밥을 빌러 온 이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봐왔다. 이런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누군가를 돕는 일에 대한 감각을 자연스레 익히게 된 듯하다”고 말했다.


 하 이사장의 기부는 복지 영역은 물론 전공인 의료·생명 분야까지 다양하다. 최근 창원한마음병원은 포스텍(포항공대)에 발전기금 100억 원을 기부했다. 생명공학 분야 대표 연구기관으로 꼽히는 포스텍이 ‘의사과학자’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달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지켜보며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다. 우리나라는 진료의사는 많은 데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는 상대적으로 적다”며 “중국도 백신을 만들어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고 했다. 왜 포스텍일까. 하 이사장은 “포스텍엔 생명공학 권위자를 포함해 연구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며 “세계는 코로나19뿐 아니라 다양한 감염병에 대비해야 한다. 포스텍이 그 산실이 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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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포스텍 발전기금이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했다. “화이자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약만 가지고도 국내 대기업의 몇 곱절에 달하는 매출을 일으킵니다. 포스텍이 신약·바이오 등 헬스케어 분야에서 역할을 해준다면 이는 국익에 크게 기여하는 것입니다. 경남은 의료 인프라가 전국에서 가장 열악한 편입니다. 포스텍과의 협력을 통해 향후 의과대학 설립이나 3000병상 단위의 대형병원 설립·운영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전문성에다 높은 인지도까지 갖춘 인사는 으레 정치권 러브콜을 받는다. 하 이사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한때 정치에 대한 생각도 품었지만 지금은 전혀 뜻이 없다. 내가 정치에 껄떡댔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치보다 내가 하는 일이 훨씬 멋지고 뜻 깊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그이지만 슬하 두 아들에게는 항상 미안하다. “아이들 깨기 전 집을 나서 잠들고 나서야 귀가하는 세월이 길었어요. ‘어릴 적 아버지와 즐거운 기억이 하나 없다’는 아이들의 말을 들을 때면 미안해요.” 그래서일까. 인터뷰를 진행한 그의 집무실 책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어린 시절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그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충분히 눈에 담아놓지 못해 어릴 적 사진을 둔 것”이라고 했다. 책장에서 한 가지 더 눈에 들어온 것은 한가운데 꽂힌 ‘병원장은 있어도 경영자는 없다’(박개성·엘리오헬스케어팀)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병원장직은 ‘감투’가 아니며, 병원장이 그저 한 명의 의사로 머무르는 데서 벗어나 비전을 제시할 때 병원은 이익창출은 물론 사회적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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